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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관시대(1953년~1976년)

휴전이 협정된 후 임시수도가 환도하면서 부민관은 1953년 9월 22일 시민관(市民館)으로 개명 후 알프렛 히치콕 감독의 <암굴의 야수> 상영을 시작으로 새로운 시민관시대를 열어갔다. 그러나 시민관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동아극장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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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극장과 부민관 시대(1946년~1953년)

광복된 상생관은 소화관, 보래관, 부산영화극장과 함께 1945년 12월 17일 일제강점기때 사용되어 오던 극장명을 우리 손으로 작명하기 위해 현상금 4,000원을 내걸고 선정에 들어가 대중극장(大衆劇場)이라는 명칭으로 새롭게 태어나면서 1946년 1월 1일부터 불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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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관시대(1916년~1945년)

상생관은 연극전용극장인 변천좌(1912년?~1916년)를 미쯔오 미네지로오가 인수하여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개축하여 개관된 곳이다. 대지 95평, 1, 2층 총건평 165평으로 관객은 1층 350명, 2층 307명, 입석 148명, 총 805명이 수용되었던 영화관으로 상생관의 외형장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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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극장 시대(1959년~1973년)

광복과 함께 징발된 문화극장(文化劇場)은 14년간에 걸쳐 미군 전용극장, 임시 수도 국회의사당, 미군 전용 위안극장, 부산우체국 국제우편과 등으로 사용되어 오다 의용촌에 운영권이 넘어가는 등 결코 적지않은 세월을 낭비해오다 내부시설 공사를 마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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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전용극장시대의 문화극장(1945년~1959년)

광복 후의 문화극장은 극장으로서 제 구실을 하기까지는 매우 험난했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1945년 9월 17일 미 제24군단 소속 제6사단이 부산에 진주하면서 국제영화극장(國際映畵劇場)은 정부로부터 징발되어 미군 전용극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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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래관 시대 (1914년~1945년)

보래관은 개관 후 기쯔라파만담(桂派落語), 구니이에 분자에몬(國家文左衛門) 일행 등의 신극과 가부끼 등의 무대 공연으로 경영되어 왔으나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준비 끝에 1915년 3월 9일 부산의 제2호 활동사진 상설극장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개관 프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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