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관객 중심의 연극전용극장, 태평관 (1922년~1943년)
✽ 극 장 명 : 태평관(太平館: 타이헤이간)
✽ 주 소 지 : 부산부 행정 1정목 9번지 / 중구 창선동
✽ 개관일자 : 1922년
✽ 폐관일자 : 1943년 11월 19일 화재로 소실
✽ 관 주 : 요시다 겐조(吉田元藏)

일본인 상권과 주거지 중심인 행정에 위치했던 극장 태평관은 일본 거류민 관객들을 주상대로 일본의 신극과 구극, 연쇄극 공연 위주로 경영되었던 연극 전용 극장이다. 개관 1년 후 경쟁극장인 부산좌가 화재로 소실되면서 마쯔모도 류따로 일행, 산유 데이에이유 일행, 시사극단 등 내로라하는 일본 공연물들을 독식하다시피 상연했다. 태평관은 이웃하고 있던 활동사진 상설관인 보래관, 행관과 함께 꽤나 소문났던 극장이었으나 근거리에 1934년 연극전용극장인 부산극장이 개관되면서 경쟁 관계를 유지해오다 1943년 화재 사고로 소실되었다.

극장 태평관의 외형은 일본 전통가옥 구조에다 정면 부분만 나무 위에 라스를 치고 미장을 한 건물로 보이며 르네상스식 장면을 가지고 있는 전환기 일본 신건축의 절충식 건축방법이다. (이형재 건축사 고증) 「부산상공안내」(1932) 자료에 의하면 태평관은 1등석 134명, 2등석 419명, 3등석 88명, 정원 641명을 수용할 수 있는 중형극장으로 규모면에서는 상생관과 비슷한 크기의 극장이었다. 관주 요시다 겐죠(1865년~?)는 오사카에서 출생하여 일찍이 연극계에 입문하여 활동하다 북큐슈의 극장 와까마쯔 아사히자와 야하카 아사히자의 극장주 후지이사무소에서 10년간을 근무하다 1904년 부산에 이주하여 초기 부산 지역에 상존했던 극장 송정좌, 행좌, 동양좌, 부산좌, 보래관에서 출입계원으로 근무하며 경력을 쌓은 후 국제관 창립에도 관여했으며 이후 태평관을 경영하면서 일생을 극장 경영에 관여했다. 화재로 소실 때는 영업전무 야마모토 교타로(山本京太郞)가 관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