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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영화관 시대: 총 27개소 극장 개관

단일건축물 구조로 설계된 영화관(단관)의 운영은 1회 1편 상영을 원칙으로 관객이 퇴장한 다음 차회 상영객의 입장방식으로 경영되어온 시스템이다. 단관극장의 구조적인 특징은 화제작의 경우 경영 극대화를 노릴 수 있는 커다란 장점을 지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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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시대: 48개소 극장 개관

1980년대 부산 극장가의 전망은 그리 밝지 못했다. 단관극장이 1971년 현재 60개관이 상존했으나 1970년대 경기 침체로 인해 1979년 37개관, 1980년 33개관, 1981년 들어서는 30개관으로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던 그해 12월 31일 발효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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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90년대, 단관시대의 퇴조

1980년대는 프로야구가 개막되는 등 다양한 레저붐으로 여가문화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1980년 현재 부산의 극장 보유수는 33개소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1980년대 들어 개관을 본 극장은 총 5개소에 그쳤다. 1983년 남포동의 혜성극장과 구포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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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와 쇠퇴기의 1970년대

유신정권하의 1970년대는 1971년 한국영화 진흥조합이 설립되면서 개정영화법 제2217호가 공포된 후, 1972년 들어서는 21개 제작사 중 부실 제작사 3개소의 등록이 취소되고 1974년부터는 분기별로 우수영화를 선정하여 외화수입 쿼터 1편을 보상하는 정책이 실시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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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부산 극장가, 관객 동원 최고기록

한국영화 중흥기(1958년~1964년)와 전성기(1965년~1970년)를 열어가던 1960년대는 4·19 학생의거와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국내 정정이 혼란을 겪으면서도 부산은 1963년 1월 1일 직할시로 승격, 인구는 136만명을 돌파하여 명실상부 한국 제2의 도시로 발돋움해 가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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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후 대형 영화관 등장

1950년 한국전쟁으로 피난민이 대거 유입되는 부산은 빠르게 인구증가세가 진행되어가자 부산 극장가는 극장 부족으로 인해 가설극장이 재등장하는 등 혼란이 가중되어 갔다. 11개의 상설극장 중 문화극장은 미군정기에 이어 다시 미군 전용극장으로 이용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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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개관된 제1호 극장, 북성영화극장

1947년 1월 23일 서면로터리 전차정류소 입구에 순 부산자본으로 세워진 최초의 북성영화(北星映畵)극장이 개관되었다. 극장 소재지는 부산진구 부전동 112번지, 대지 365평, 무대 20평, 좌석수 1층 400명, 2층 38명, 허가 정원수 570석으로 규모면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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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기, 11개 극장 상존

부산지역 역시 정치, 사회적으로 극도의 혼란과 무질서가 횡행하면서 경남도지사에 취임하는 하리스는 9월 25일부터 밤 8시 이후 익일 4시까지 야간 통행금지를 실시, 치안유지를 강화하면서 통제해 나갔다. 해방 공간의 부산 극장가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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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관시대: 78개소 극장 개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은 부산에는 재부 일본인이 경영하다 남겨진 대중문화공간인 극장(劇場:映畵館)은 모두 10개소였다. 극장이 가장 많았던 곳은 일본인 상권과 주거 중심지인 중구 지역으로 창선동의 보래관(후일 문화극장)과 소화관(후일 동아극장), 동광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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