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최초의 시민문화전당, 부산공회당 (1928년~1953년)
부산 최초의 시민문화전당, 부산공회당 (1928년~1953년)
✽ 극 장 명 : 부산공회당(釜山公會堂)
✽ 주 소 지 : 대창정 4정목 16 / 중구 중앙동
✽ 낙성일자 : 1928년 4월 9일
✽ 폐관일자 : 1953년 11월 27일 화재로 소실
1925년 4월 17일 경상남도 도청 소재지가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돼 오면서 부산부를 대표할 수 있는 문화공간인 부산공회당 건립이 가시화되면서 준비에 들어갔다. 1926년 행관 관주였던 하사마 후사타로가 10만 원의 기부금을 출원하고 만주철도(주)가 부지를 무상으로 대부하면서 공사에 들어가 1928년 4월 9일 완공되어 부산부 관리하에 운영되었다.
부산공회당의 규모는 건평 194평, 총 건평 640평, 1층은 194평, 2층 192평, 3층 180평, 4층 56평, 지하 17평으로 벽돌 및 철근 콘크리트 병조(倂造)의 근대식 4층 건물로 건축 높이는 52척 5촌, 조선총독부 건축과장 岩井이 설계 및 감독을 맡았으며 공사는 조선토목협회의 기노시다 모도지로(국제관 극장 관주)가 총 공사비 약 170,000여 원으로 완공시켰다. 수용 가능 인원은 대집회실이 총 1,003석, 소집회실이 40~80명 입장 가능했으며 구조는 1층에 소집회실, 이발관, 식당, 오락실, 당구장, 창고, 2층은 대집회실, 흡연실, 3 ・ 4층은 계단식 관람석, 지하는 창고, 화장실은 1, 2, 3층에 각각 자리하여 공회당은 부민들의 공공성을 위한 건물로 완공됐다.
공회당은 낙성식 일주일 전인 1928년 4월 2일 미국 폭스사의 종교 영화 <신을 잊어버린 거리>와 <다비데 대왕>을 시작으로 다글라스 페어뱅크스 주연의 <엠텐>, <지구의 진화>, <어미에게 맹세해서>, <골고다의 언덕>, <영웅의 흔적>, <폭군 네로>, <천국의 사람>, <여자는 마침내>, <킹 오브 킹>, <노를 잡는 손>, <맹수국 횡단>, <맹수국 세계횡단> 등의 많은 외화가 상영됐다. 조선 영화는 <장화홍련전>(24, 김영환), <숙영낭자전>(28, 이경손)이 대구 만경관의 주임변사 손병두의 해설로 상영됐으며 <아리랑>(26, 나운규), <아리랑후편>(30, 이구영) 등도 상영됐다. 그 외 연극, 무용, 음악 등의 다양한 문화 공연과 모임 등이 개최됐으나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일본 육군성이 만든 <비상시 일본>, 부산 재향군인연합분회 후원으로 공개된 <대공군>, 독일대사관 특별 제공의 <독일, 폴란드 진격>, 조선 방공협회 경남도연합지부의 순회강연 및 영화가 상영되어 그들의 전쟁행위를 정당화하려는 목적의 영화가 부민을 상대로 수시로 공개되면서 신문들은 언제나 만원, 성황을 이루었다고 보도하는 등 부산공회당은 황국신민화를 위한 문화첨병 기지로 악용되는 공간으로 전락해갔다.
광복 후에는 고려예술좌, 여인소극장 등의 공연물은 물론 우리 영화 <사랑의 봄>, <탕자의 말로>, <해방된 내 고향>, <애국자의 아들>, <고 백범 김구선생 국민장 실황> 등이 상영되기도 했으나 건물은 1953년 부산역 대화재 때 소실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