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포지역 최초의 극장, 구포극장 (1939년?~1967년)
✽ 극 장 명 : 구포극장(龜浦劇場)
✽ 주 소 지 : 경상남도 동래군 구포읍
✽ 폐관주소지 : 부산진구 구포동 193번지
✽ 개 관 일 자 : 1939년?
✽ 폐 관 일 자 : 1967년 4월 13일 화재로 소실
✽ 관 주 : 하라구치(原口淸見)

광복을 맞았을 때 부산지역에는 일본인 소유의 극장(영화관)이 보래관을 비롯하여 상생관, 수좌, 대생좌, 소화관, 부산영화극장, 삼일극장, 대화관, 동래극장 등 총 9개소였다. 구포극장 경우는 행정구역이 경상남도 동래군에 속하므로 앞의 부산부 지역내 극장에서는 제외되었으나 1963년 부산직할시 승격과 함께 관할 주소지가 부산에 편입되면서 부산지역 영화관으로 경영되어 오다 폐관된 곳이다.

구포극장에 대한 사실 규명을 입증해 준 가장 오랜 기록은 1941년 6월호「삼천리」 잡지 209쪽의 ‘전조선극장 총수 139관 – 주요 극장사진 대부요금 일람표’다. 표 내역에는 구포극장을 포함하여 1939년~1940년도의 실황(기록)임을 밝힘으로 구포극장은 최소한 1939년 현재 경영되고 있었음을 검증해 주고 있으나 개관일자는 미상임을 밝혀 둔다. 그 외에도 「소화 17년(1942), 18년(1943) 영화연감」은 조선의 영화상영관 소개에서 경남 동래군 소재 293석의 구포극장, 관주 하라구치를 기록하고 있다. 광복 후 구포극장의 기록은 1947년 6월 29일자 민주중보는 자사가 주최한 종합예술제를 7월 1일 대생좌(중앙극장 후신)를 시작으로 7월 11일 구포극장으로 이동, 개최한다는 소식이 보도됐으며 부산 지역 극장문화협의회의 기관지였던 「극장문화」2호(1954년 7월 10일)는 경남 지역의 각 극장과 함께 구포극장을 소개했다. 그 외에도 「한국연예대감」(1962)은 동래군 구포읍 구포동 193번지 350석, 대표 권형진, 「경상남도지(중)」(1963), 「영화연예연감」(1969)의 극장일람표 등에서 구포극장의 상존을 각각 기록하고 있어 구포극장은 일제시대부터 구포 주민들의 유일한 대중 문화공간으로 사랑받아 왔던 곳이었음을 규명해주고 있다.

부산 극장협회의 극장실태 조사표에 의하면 구포극장의 규모는 102평 대지 위에 목조 2층 구조로 건축된 영화관으로 좌석은 1층 168석, 2층 17석, 입석 135석 계 320석으로 무대가 7.45평, 비상구가 1층에 4개, 2층에 2개였으며 환기장치 3개소, 화장실이 1층에 대 6개, 소 5개를 갖춘 작은 규모의 극장이었다.

구포극장은 구포역 앞에서 간선도로를 따라 구포장터로 들어가는 300여미터 지점에 위치했었으며 폐관 이후에는 극장 자리가 도로에 편입, 철거 됐으며 그 후 행정 구역마저 부산진구에서 북구로 변경됐다23. 구포극장이 쇠퇴의 길을 걷게된 것은 1960년 500석의 신영극장과 1963년 285석의 동영극장이 각각 주변에 들어서자 노후화된 구포극장은 경쟁에 밀리면서 1966년 3월 23일 운영난 끝에 휴관 중이었으나 재개관된 극장은 1967년(대표: 권형진) 화재로 소실되었다.


23 백이성 낙동문화원장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