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최초의 대형극장, 부산좌 (1907년~1923년)
✽ 극 장 명 : 부산좌(釜山座: 후산자)
✽ 주 소 지 : 부평정 2정목 / 중구 부평동
✽ 개관일자 : 1907년 7월 15일
✽ 폐관일자 : 1923년 3월 22일 화재로 소실
✽ 좌 주 : 오이케 타다스케(大池忠助)

거류민 1세대 실업가였던 오이케 타다스케가 야마모토 준이치(山本純一), 나까무라 토시마츠(中村俊松), 고지마 진기찌(五島甚吉)와 공동으로 합자하여 1907년 4월 자본금 총액 30,000원, 불입자본금 20,000원을 출자하여 부산연극합명회사를 창립 후 기존의 극장인 행좌, 송정좌, 부귀좌의 뒤를 이어갈 새로운 극장 부산좌 신축에 들어가 같은 해 7월 15일 개관하였다. 부산 최초의 대형극장 부산좌가 탄생되기까지의 과정은 처음부터 치밀하고 조직적인 기획하에 진행되었다.

부산좌의 건축을 맡은 후루카와(古川)는 좌주 오이케의 의견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 오사카의 여러 극장을 견학 후 이를 참고하여 일본 전통형식과 서양의 현대식 건축방식을 절충하는 형식을 취했다. 극장 오른쪽에는 가벼운 식사를 할 수 있는 다방을, 왼쪽에는 목책을 둘러 넓은 정원을 설치했으며 그 규모는 조선과 만주 내에 세워진 극장 중 최고를 자랑할 수 있는 극장으로 건축에 들어갔다. 극장 내부설치는 관람석에 방석을 깔고 앉는 구조를 취했다. 일본 씨름판의 관객석과 같은 구조의 형식으로 무대 정면은 99석, 좌우측이 각각 225석으로 총 입장 가능한 객석이 1,540석으로 규모가 매우 큰 극장이었다.

무대는 지름이 6칸, 무대와 관람석이 극장내부를 양분하여 어떠한 무대장치(大道具)를 사용해도 지장이 없도록 설계했으며 연극 공연장으로서는 최대의 장점이 될 수 있는 회전무대 시설을 갖추어 부산을 대표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출범케 했다. 배우 대기소는 무대 뒤에 위치하여 넓게 배치함으로 규모가 큰 극단이 와서 공연을 하여도 좁은 느낌이 안들 정도였다. 특히 무대는 설계 때부터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배려했다. 장내는 총 35개의 전등이 무대에는 6개의 전등이 설치됐다. 야간 공연시에는 관객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극장내 설비를 현대식 시설로 갖추었다.12

부산을 대표하여 세워지는 연극전용 극장 부산좌는 일본 거류민의 새로운 주거 중심지로 떠오른 부평정에 위치했으며 주 관객층은 일본인 위주로 경영되었다. 1923년 화재로 폐관되기까지 17년 동안 경영되어온 부산좌는 행좌, 송정좌, 변천좌, 동양좌, 질자좌, 욱관, 보래관, 초량좌, 행관, 상생관, 국제관, 유락관, 태평관 등 13개 극장과 상존해 오면서 행좌, 송정좌, 변천좌, 동양좌, 질자좌, 욱관, 초량좌 7개 극장은 부산좌보다 먼저 폐관되었다. 부산좌는 1915년 10월 15일 부산 소방조 대장 지도세 사다기치와 니시오가 공동으로 임차하여 경영되는 등 경영에 애로를 겪기도 했으나 화재사고로 폐관된 후 설립자 오이케는 부산좌의 복원을 목표로 수차례에 걸쳐 쟁점화했으나 실현되지는 못했다.

활동사진 상설관 시대를 맞는 극장 부산좌도 활동사진을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경영되었다. 1915년 10월 15일 개봉되어 4일간 상영된 작품은 미쯔노 강게츠(水野觀月) 일행의 활동사진 연쇄극, 〈쿠스노기 마사시게공 일대기>, 실사물 〈수이쯔루의 풍경>, 신파희극 〈마법용>, 태서활극〈형사의 고심>, 전 4권짜리 신파비극 〈짝사랑〉을 상영했다. 부산좌에서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연쇄극이 상연됐다. 같은해 10월 19일 3권짜리 <시라기꾸 이야기> 23일에는 20장 4막짜리 <신한젖을 먹고 자란 자매>가 28일에는 6막 25장짜리 <신따오기>, 1918년 3월 28일에는 <세도 나이가이행>이 상연되었다. 부산좌에서는 특별영화 상영회도 수차례 공개되었다. 전 9권, 25,000척 짜리 대작영화 〈아 무정〉(원제: 레미제라블)이 1915년 4월 23일, 24일 2일동안 3회 상영되었다. 입장료는 특등석 1원, 1등석 70전, 2등석 50전, 3등석 30전의 꽤나 비싼 요금이었으나 학생단체를 포함하여 2,372명이 관람하여 순이익 402원 28전의 흥행성적을 올렸다.13 1921년 9월 24일 이탈리아 치네스사가 촬영비 500만 원, 출연자 25,000명이 동원된 12,000척 짜리 사극 <어디로 가시나이까>(원제: 쿼봐디스) 상영 때는 특등석 1원 30전, 1등석 1원, 2등석 70전, 3등석 50전, 어린이 반액으로 입장되었다. 그 외에도 부산좌의 무대에서는 음악회, 무용발표회, 투견대회, 권투시합까지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열렸던 특별했던 극장이었다.


12 「조선실업」 제26호(1907년 8월 15일)
13 1915년 4월 30일 부산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