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래관 시대 (1914년~1945년)
보래관은 개관 후 기쯔라파만담(桂派落語), 구니이에 분자에몬(國家文左衛門) 일행 등의 신극과 가부끼 등의 무대 공연으로 경영되어 왔으나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준비 끝에 1915년 3월 9일 부산의 제2호 활동사진 상설극장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개관 프로는 2권짜리 태서정극(泰西正劇: 외국영화) <비밀서류>를 비롯하여 골계(滑稽: 희극물) <결혼의 밤>, 구극 최장척<아끼시노이야기>, 신파 활비극 전3권짜리 <목숨의 표적>, 실사 <청도 공격〉, 그 외 희극물 등 수 편이 상영됐다. 입장료는 1등석 25전, 2등석 20전,3등석 10전으로 초기에는 동경 천연색 활동사진 주식회사와 특약을 맺고 경성의 황금관과 동시 개봉되었다. 그 후 일본의 데이코쿠 키네마 주식회사는 물론 상생관이 공급받던 닛카츠, 미국의 유니버셜영화사, 폭스사, 바이타그라프사, 워너사,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 그리고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 영화까지 다양하게 상영되어 경쟁 영화관이었던 행관, 상생관과 함께 보래관은 부산이 자랑하는 3대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그 명성이 자자했다.
부산에서는 가장 먼저 연속활극 시리즈물을 선보인 보래관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스케일의 영화 <하트3!!>을 1916년 7월 8일 상영에 들어갔다. 길이가 장장 총 124,000척으로 25편 50권짜리 대작이었다. 미국 트란스애틀란틱사가 만든 <하트3!!>은 「진천동지(振天動地) 미증유(未曾有)」의「대모험 대활극(大冒險大活劇) 세계적 대사진(世界的大寫眞)」이라는 헤드라인 카피를 앞세우며 홍보전에 총력을 기울였다. 촬영에 실제 참여한 비행기가 5대, 자동차 27대, 기차 130량, 기선 6척, 그 외에도 보트 수백 척이
동원되어 2년 8개월 간에 걸쳐 촬영되었으며 촬영 비용 또한 520만 불이나 투입된 블록버스터급 연속활극으로 관객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시대를 활짝 열어주는 계기가 됐다.
그후 보래관에서 상영된 연속활극 시리즈물은 바이타그라프사, 유니버셜사, 파테사, 워너사, 메트로사 등이 만든 미국 영화가 대부분 상영되었다. 전 30권 짜리 <지키는 그림자>, 32권의 <빨간 눈>, 31권의 <미라의 비밀>, 46권의 <백만불의 비밀>, <대도전>, 30권의 <대천지(大天地)>, 36권의 <대비밀>, 30권의 <곡마단의 비밀>, 30권의 <매의 추적>, <유령기수>, <별의혼>, 36권의 <不思議의 범인>, 30권의 <자(紫)의 기수>, 36권의 <다이아몬드여왕>, 36권의 <독선풍(毒施風)>, 31권의 <맹수의 나라>, 36권의 <대마왕>, 30권의 <전화(鐵火)프라이스>, <마의 진주>, <미로의 비밀>, 30권의 <13의 비밀>, 24권의 <18일간 세계일주>, <맹호의 협위(脅威)>, 30권의 <범의 발톱>, <백만불 현상>, 30권의 <낙원의 야수>, <사교계의 괴적>, 30권의 <신속열차>, 30권의 <철의 사람>, 30권의 <북극의 이리>, <플레이볼>, <괴인습격>, <검우(劍雨)> 등이 1929년까지 상영되었다.
다른 영화 역시 매우 다양하게 소개되었으며 당대의 화제작들이 빠짐없이 상영되었다. 릴리안기쉬 주연의 <동도(東道)>, <벧스리아 여왕>, <애화(愛花)>, <폭풍의 고아>를 비롯하여 메리 픽포드의 <사랑의 기쁨〉, <소공자>, <격류〉, 자넷 게이너의 <거리의 천사>, <선라이즈>, <제7천국>, 진하로우의 <지옥의 천사>, 그레타가르보의 <안나 카레니나>, 당대 최고의 희극배우로 세계적인 명성을 이끌던 찰리 채플린의 1, 2권짜리 희극물 <총리 대신>, <전처>, <접시돌리기>, <제2철방 채플린>, <전선(戰線)의 채플린>, <출세일대기>, <칼멘>, 버스터 키튼의 <황무자>, <연애3대기>, <키튼의 공중회전>, 해롤드 로이드의 <맹진 로이드>, <깜짝깜짝>, <거인정복>, <스피디> 그 외 <바빌론성 몰락>, <허리케인>, <사랑의 꽃>, <오크라호머키드>, 러시아 영화 <아시아의 폭풍>, 독일 우파사의 <최후의 중대>, <알제리 여자>, <니나페트르브나>, <이중결혼>, <아스팔트>, <백마>, <탄식하는 천사>, <왈츠의 꿈>, <펀치네로>, <뽀리>, <어미와 아들>, <대통령>, <제9교향악>, <조춘>, <카라마조프의 형제>, <백림의 처녀 >, <배신자>, <애국자>, <코스모폴리스>, <메트로폴리스>, 시네아리안츠사의 <미완성교향악>, <몽블랑의 왕자>, <마즐르카>, <봄의 초대>, 토비스사의 <제복의 처녀>, <흑의의 처녀>, <O.F씨의 토란크>, <봄의 비>, <인생의 바보>, <빈의 신부> 그 외 에밀야닝스 주연의 <아버지와 아들>, <신들의 총아>, 프랑스 영화는 <파리제>, <리리옴>, <여자만의 도시>, <제니의 집>, <환(幻)의 마차>, 쥬리안 듀비비에 감독의 <골고다의 언덕>, <파리 베를린>, <망향>, <하얀 처녀지>, <몽빠르나스의 밤> 등이 상영됐다.
보래관은 행관에서 1929년 처음으로 발성영화를 상영한지 1년 후인 1930년 7월 26일 닛카츠사(日活)의 제1회 작품인 <고향>을 상영하면서 발성영화 상영관 시대의 대중화를 열어 나갔다. 관주 이와사끼는 1937년 9월 2일 극장 노후화로 인해 재신축을 결정 후, 상영중인 프로는 부산극장으로 이동 상영되면서 1년 1개월만인 1938년 10월 5일, 140평 대지 위에 3층 석조건물(총 건평 341평 22합)을 재신축 개관했다. 극장 수용인원은 952석의 현대식 극장으로 총 건축비 300,000원이 투입, 완공되었다. 개관작은 동화상사가 제공한 독일 우파사의 <제9교향악>, 닛카츠경도(日活京都) 영화 <어둠 속의 그림자>, 반또쯔마사브로(阪東妻三郞)의 <다방의 꽃들> 3편이 상영됐다. 이 시기의 보래관은 1928년 행관, 상생관과 함께 키네마협회를 결성 후 협조체제를 구축해오다 행관이 화재로 폐관된후 소화관이 새롭게 가입되는 부산활동사진상설관 동업조합으로 상생관, 소화관과 1944년에는 부산영화극장이 포함된 부산영화 연예조합으로 이어지는 상생관계를 유지해왔다. 보래관은 일제에 앞장서서 협조했던 대표적인 친일 극장 중의 하나였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에 협조하기 위해 영화광고(1941년 5월 25일자 부산일보)에서도 “국민 모두가 방첩 전사” 라는 구호를 싣는가 하면 “만주 사변 기념흥행”식의 표현으로 자국전쟁을 미화홍보하는 상영광고를 서슴치 않고 게재했다. 특히 조선영화는 철저하게 외면해온 나머지 단 1편도 상영되지 않았으나 1944년 친일 어용영화 <거경전>이 유일하게 개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