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카츠 계열의 영화 상설관, 보래관 (1914년~1973년)
✽ 극 장 명 : 보래관(寶來館: 호라이칸)
✽ 개명극장명 : 국제영화극장 → 문화극장
✽ 주 소 지 : 부산부 행정 1정목 15
✽ 현 주 소 지 : 중구 창선동1가 15번지
✽ 개 관 일 자 : 1914년 11~12월?
✽ 폐 관 일 자 : 1973년 8월 27일
✽ 관 주: 오노하이루(小野入)

합자회사 보래관은 연극 전용 극장으로 출범하였으나 개관 4개월 만에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변신하여 광복기를 거쳐 1973년 폐관되기까지 59년간 부산시민의 대중문화전당으로 사랑받아 온 곳이다. 보래관은 근대 부산지역의 극장건축물 중에서는 유일하게 개관과 함께 1928년, 1938년 총 세 차례에 걸쳐 재건축된 영화관이다. 주소지는 행정 구역의 변경으로 인해 1914년 행정 1정목을 시작으로 부평정 1정목 35(1928), 행정 1정목 16번지(1938), 동대신정 2정목 33번지(1946), 중구 창선동 1가 15번지(1959)로 바뀌어 왔다. 극장명은 광복과 함께 상금 4,000원의 현상공모에 의해 1946년 1월 1일부터 국제영화(國際映畵)극장으로 새롭게 태어났으나 1949년 국립극장으로의 인가가 취하되자, 1950년 6월 18일 문교부 직할 문화(文化)극장으로 문을 열게 되지만 1주 만에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정부로부터 징발 사용되어 오다, 1959년 4월 18일 문화극장으로 재개관된 후 폐관 때까지 이어졌다.

오랜 기간 극장을 경영해 온 대표 역시 많은 사람이 바뀌었다. 개관 당시 오노 하이루로부터 이시바시 이와오(石橋岩吉, 1928), 이와사끼 다깨지(岩崎武二: 지배인), 1938년 재신축 때는 이와사끼와 고꾸라 긴죠(小倉金藤), 1946년 국제영화극장의 대표에는 서옥희가 등장하지만 같은 해 3월 15일 미군정청은 평론가 이양기, 연출가 강상신을 관리인으로 선정하나 이틀 만에 취소되고 만다. 1948년 12월 관리자로 임명된 한형석은 1950년 극장장으로 취임하여 극장을 재개관하지만, 한국전쟁으로 공백기를 보낸 문화극장은 1959년 4월 16일 극장설치 및 사용허가를 필한 후 이틀 후인 18일부터 이규환 감독의 <애련의 꽃송이>를 상영함으로 오랜 숙면끝에 실질적인 문화극장으로 다시 되돌아오면서, 이영일 대표체제로 경영되었다. 그러나 1965년부터 세기상사(주)의 우기동 대표가 임대로 운영해오다 1968년 이영일 전대표가 복귀하면서 폐관 때까지 경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