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끝난 부산 지역 극장가는 동아극장과 부산극장, 시민관을 중심으로 3개 영화관이 흥행가치가 높은 외국영화를 독점하다시피 상영하여 왔으나 1955년 현대식 시설을 갖춘 현대극장 개관을 시작으로 1956년 국제극장, 1957년 대영극장과 제일극장, 서면의 동보극장들이 차례로 세워지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외화 전문관으로는 현대극장, 국제극장이 조건을 갖춘 새 영화관으로 자리잡아가기 시작하자 부산극장은 외화 상영관과의 경쟁에서보다는 흥행 측면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간과하면서 한국영화 유치를 새로운 전략으로 오석조 대표 체제가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한국영화 제작 증가세가 뚜렷해지기 시작하면서, 문맹율이 높았던 관객층인 소위 고무신 관객이 빠르게 흘러 가는 한글자막을 소화해 낼수 없는 외화보다는 우리 말이 나오는 한국영화(당시에는 국산영화라 칭했다)를 선호하는 관객에 포커스를 맞춤으로 부산극장은 한국영화 상영 비율을 높임으로 서서히 한국영화전용관으로 자리잡아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략승부로 인해 부산극장의 운영평가는 부일영화상 시상식에서 5차례나 우수 한국영화 상영극장상을 차지하는 행운까지 뒤따랐다. 1958년 3월 27일 제1회 시상식 때는 베스트 파이브 중 <실낙원의 별 전편>이 14점, <황혼열차> 7점을 받아 우수 국산영화 상영극장상을 처음으로 수상했다. 1960년 제3회 부일영화상 시상식에서는 일반 관객의 인기투표에 의해 4,065표를 얻어 친절극장 1위를 차지했다.

1961년 제4회 부일영화상에서는 베스트 텐 선정에서 <젊은 표정> 2위, <지상의 비극> 3위, <박서방> 5위, <정열 없는 살인> 6위, <어느 여교사의 수기> 8위, <피 묻은 대결>이 10위를 차지하여 총 6편을 상영하여 우수 국산영화 상영극장상을 두 번째 수상했다.

1972년 제15회 부일영화상에서도 베스트 텐 선정에 <분례기> 1위, <화녀> 3위, <옥합을 깨뜨릴 때> 4위,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7위, <어느 부부> 9위, <순결>이 10위를 차지하여 우수 한국영화 상영극장상을, 1973년 제16회 부일영화상 베스트 텐 상영은 <화분> 2위, <무녀도> 3위, <밀녀> 4위, <효녀 심청> 8위, <충녀>가 9위로 6편을 상영하여 우수 한국영화 상영 극장상을 차지했다. 이와 같이 부일영화상과 인연이 깊었던 부산극장에서 시상식이 열린 것은 1961년 제4회와 1968년 제11회 두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