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관 시대 (1931년~1945년)
영화상영 전용극장 소화관의 개관 기념 프로는 막강했다. 데이코쿠(帝國) 키네마사의 8권짜리 <근대결혼풍경>, 신쿄(新興) 키네마사의 반또쯔마 사브로 주연 10권짜리 <풍운나가또성>, 미국 파라마운트사의 희극물 <로이드의 다리가 제일> 3편이 4일간 상영됐다.
상영작은 사꾸라바상사(サクラバ商事)주식회사에 의해 배급, 경영되었다. 남빈정 3정목 3번지 소재 사꾸라바상사는 1931년 11월 25일 자본금 10만 원, 불입금 5만 원으로 설립됐으며 설립목적은 소화관 경영을 비롯, 각종 영화의 임대차 및 판매, 활동사진기계 부속품 임대차 및 판매, 제연예흥업, 활동사진 부대일체사업으로 허가됐다. 사꾸라바 상사의 중역진은 대표에 하리카와 츠루마츠(梁川鶴松), 전무에 사꾸라바 후지오, 취체역에 하야시 코타루(林廣太郞), 카토죠(加藤襄), 구보 키요시(久保淸), 야마다 추이치(山田忠市), 사카마토 카메조(坂本龜藏), 감사에 나가후지 테투지로(長藤徹次郞), 야하시 라이지(八橋雷二)08다. 소화관의 경영은 경쟁 관계의 보래관, 상생관과 함께 1932년 부산 활동사진 상설관 동업조합을 결성, 업계 단결을 공고히 해가면서 배급은 대중문예사 영화, 다이토(大都)영화, 도호(東寶)영화, 미국의 메트로골드윈사, 파라마운트 영화사, P.C.L토크 영화사, 독일의 우파사 등과 상영계약을 체결하여 조선과 만주까지 배급하면서 행관시대의 정통성을 이어 갔다.
1932년 6월 24일 발성영화관 설비를 갖춘 소화관은 마를리네 데트리히 주연의 <상해특급>을 시작으로, 크라라 보우의 <여급과 강도>, 게리 쿠퍼의 <시가(市街)>, <모로코>, <벵갈의 창기병>, <바다의 혼>, <평원아>, <오페라핫드>, 세실 B. 데밀 감독의 <폭군 네로>, <십자군>, <마담 사탄>, <십계>, <신세기> 그리고 <간첩 X29>, <노틀담의 곱추>, <거인>, <지킬 박사와 하이드>, <야구왕>, <벤허>, <브론드 비너스>, <유원인 타잔>, <킹콩>,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등의 미국영화, <외인부대>, <금남의 집>, <파리의 지붕 밑> 등의 프랑스영화, <회의는 춤춘다>, <귀향>, <에로>, <광풍의 몬테카를로>, <알프스의 창기대>, <세계의 왕자>, <백일귀>, <급강하 폭격대>, <세 계대동란>, <고향>, <불타라발칸>, <육탄산악전>, <아침노을>, <남방특급열차>, <베리에테의 소녀>, <산모릿츠의 처녀들>, <한네레의 승천>, <조국에 고한다>, <추억의 원무곡>, <삼문(三文)오페라>, <지배인> 등의 독일영화가 상영됐다. 조선영화는 1936년 조선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1935, 이명우)을 시작으로 보래관, 상생관과는 달리 가장 많이 상영했다. <장화홍련전>(36, 홍개명), <나그네>(37, 이규환), <미몽>(36, 양주남), <심청>(37, 안석영),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39, 이명우), <국경>(39, 최인규), <성황당>(39, 방한준), <아리랑 3편>(36, 나운규), <무정>(39, 박기채), <처의 모습>(39, 이창근), <새출발>(39, 이규환), <집 없는 천사>(41, 최인규)를 비롯하여 친일어용영화 <국기 밑에서 나는 죽으리>(39, 이익), <바다의 빛>(40, 야마나까), <너와 나>(44, 허영), <거경전>(44, 방한준) 등이 경성 상영 후 빠르게 개봉되었다. 소화관 경영시대에는 기존의 보래관, 상생관, 유락관, 태평관, 수좌, 중앙극장과 함께 소화관 이후 개관된 부산극장, 구포극장, 대화관, 삼일극장, 동래극장과 상존 경영되었다.
08 조선은행회사 조합요록. 1933년 동아경제시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