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이 되면서 소화관이란 이름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새롭게 출발되는 조선극장의 경영은 1945년 12월 28일 악극단 <화륜선> 공연을 시작으로 1949년 11월 29일 프랑스영화 <비련> 상영까지 4년간 지속되었다.

이 시기는 미군정기를 거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좌우대립의 정치적인 격변과 함께 경제, 문화, 사회 모든 분야가 혼돈을 겪던 때여서 부산지역의 다른 극장 경우와도 비슷하였지만 조선극장도 신작 영화가 없는 상황에서 영화 상영보다는 해방 후 새롭게 창립된 악극단인 해방극장, 극단등대, 극단 혁명극장 등의 창립 공연물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 외에도 빅토리래뷔단, 민중 극단, 아리랑 악극단, 수도 가극단, 백우 악극단, 무학 창극단, 손목인 악극단, 이재호 기악단, 조선 창극단, 조선극장 악극단, 백조가극단, 조선 예술극장, 무궁화 악극단, 희망 악극단, 남향악극단, 서울 예술극장, 동방 악극단, 태평양 악극단, 백민 악극단, 나미나 가극단, 태양 가극단, 옥단 병아리극장, 극단예술좌, 미미악단, 악극단 새별, KPK김해송악단, 극단 대지, 박시춘악단, 낙랑극회, 콜럼비아 악극단, 극단고려, 극단청춘, 독립극장, 문인극회, 자유극장, 극단 고향, 창극 국극사, 대도회 악극단, 악극단 신건설, ABC 악극단, CMC오향악단, 가극단 신세계, 예술극장 논개, 소인 연극회, 악극단 남대문, 악극단 제7천국, 극단 황금좌, 극단 예군, 극단 태평선, 가극단 현대, 극단 극우, 가극 단랑군, 김연수 창극단, 악극단 강남, 극단 은막, 무용극장, 가극단 낙원, 한일 창극단, 새나라 가극단, 성보극장, 가극단 별, 서울소극장 등이 모두 조선극장의 무대를 독차지하 다시피 했다. 이들 공연 외에도 전속가수 콩쿨대회, 국악원 명인대회, 서울 중앙방송국 전속만담 민요반 일행, 조택원 무용공연, 신인가수 콩쿨대회, 구왕궁 아악연주, 기합술, 만담, 마술, 최면술, 권투선수권 대회까지 다양한 공연물이 상연됐다.

우리영화 상영은 일제강점기 말과 비슷한 양상을 띄었다. 무성영화시대의 히트작인 나운규 주연의 <사나이>(1928), 이경손의 <숙영낭자전>(1928), 이규환 감독의 <무지개>(1936), 존 바리모어 주연 <파랑새> 등은 왕년의 변사 조월해(趙月海)가, 심영, 서월영 주연의 <인생출발>은 변영조, 나운규의 <아리랑>(1926)은 이상호(李相浩)09, <무지개>와 <장화홍련전>(1936, 홍개명)은 홍순중(洪淳中)10의 해설로 다시 상영되면서 변사가 조선극장의 무대 위에서 다시 활동했었다. 특히 우리 영화의 수급이 불완전한 상황에서 광복 이전의 해묵은 영화 <아리랑고개>(1935, 홍개명), 1937년작 <나그네>(이규환), <오몽녀>(나운규), <순정해협>(신경균) 등이 다시 상영되는가 하면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된 연쇄극까지 다시 등장했다.

장안무대의 <홍길동>, 극단 태평양의 <상해리루>, 조선창극단의 <장화홍련전>이 이중연쇄극으로 상연된 경우의 작품이다. 특히 우리 영화 중에는 <인생출발>, 문예봉의 <희망의 봄>과 <낙양의 절문이>, 전창근 감독, 이영, 나성의 <여자의 설움>, 이금용, 이영숙의 <바다의 사나이>, 지경순 주연의 <처의 윤리>(1941)가 <안해의 윤리>로 김유영의 <수선화>(1940)가 <정열>로 과거 상영제목을 새 영화처럼 교묘히 둔갑시켜 상영하기까지 했다. 사회가 혼란한 틈을 이용한 극장가의 속임수 행위가 성행된 사례였다.

광복 후 만들어진 우리 영화가 조선극장에서 첫 선을 보인 것은 1946년 12월 20일 이규환 감독의 <똘똘이의 모험>부터였다. 그 후 1947년 <자유만세>(최인규), <3·1 혁명기>(윤봉춘), <불멸의 밀사>(김영순), <목단등기>(김소동), 1948년 <그들의 행복>(이규환), <여명>(안진상), <밤의 태양>(박기채), <검사와 여선생>(윤대룡), 1949년 <마음의 고향>(윤용규), <청춘행로>(장황연), <푸른 언덕>(유동일), <나라를 위하여>(안종화), <안창남비행사>(여심), <애국자의 아들>(윤봉춘) 등이 개봉됐다. 그 외에도 좌·우익으로 불안했던 정국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북한괴뢰집단 뉴스>(육군본부 정보국방첩대), <특보뉴스 여수·순천 반란사건>, <지리산작전>(육군본부 작전교육국제작), <의용군활약뉴스>, <해방뉴스>, <올림픽뉴스>, <서윤복뉴스>, <런던올림픽경기실황>, <UN조위래부 기록특호>, <미군정 최신뉴스>도 상영됐다.

외국영화가 원활하게 소통되기 시작한 것도 1946년 들어서였다. 미국영화 <타잔>, <광야의 쾌남아>, <거성지그필드>, <미국의 기밀실>, <악마의인형>, <첫사랑>, <소년의 거리>, <결사의 탐험>, <대서양의 비밀>, <광란의 서부>, <비율빈작전>, <산프란시스코>, 프랑스영화 <춘희>, <창살없는 감옥>, <망향>, <불란서좌>, <몽빠르나스의 밤>, <여자만의 도회>, 영국영화 <킹솔로몬>, 독일영화 <공중극장>, <헝가리야곡>, 아르헨티나영화 <장미의 탱고>가 상영됐다. 1947년은 미국영화 <진주목걸이>, <해적> 등이 개봉됐으며 그중 대다수의 작품은 이미 제작된지 오래된 영화들이 수입 공개됐다.

이 시기의 조선극장은 부민관(후일 시민관), 부산극장과 함께 부산지역의 영화 전당으로 명성을 같이 해오면서 1949년 동아학숙에 불하되어 새로운 동아극장 경영시대를 맞게 된다.

47년 상영작 : <로즈마리>, <로미오와 쥬리엗>, <씨훅>, <키튼 행운아>, <쾌남 락크린>, <모록코>, <그레이트왈츠>, <대평원>, <사랑의 노래>, <무역풍>, <대뉴욕>, <큐리부인>, <노래하는 수녀>, <바바리코스트>, <모히칸족의 최후>, <어느날 밤 살인사건>, <에이브라함 링컨>, <유령의집>, <선풍대위>, <정글의 악마>, <파랑새>, <텍사스결사대>, <회상의 소야곡>, <방년의 봄>, <오늘저녁은 유쾌히>, <천당갔다온 사나이>, <마음의 행로>, <하늘의 젊은용사>, <탈출>, <붐타운>, <콜시카의 형제>, <폭풍의 청춘>, <청발 8인처>, <천국의 길>, <운명의 만하탄>, <꽃피는 전원>, <의혹의 청춘장>, <미인극장>, <아들4형제>, <나무는 자란다>, <모록코의 길>, <통신연애>, <스윙호텔>, <젠 에어>, <은반의 여왕>, <자라가는 시절>, <로라살인사건>, <보물섬소동>, <까스등>, <온정의 마을>, <황야의 결투>, <철완찜>, <캐그니의 신문기자>, <다빈의 자장가>, <한발은 천국에>, <무명의살인>, <연애수첩>, <서부를 달리는사랑>, <불법의 정의>, <타잔의 신모험>, <툰드라>, <벵갈의 결사대>, <정열의 등대>, <농부의 딸>, <영원의 처녀>, <선풍대위>, <보물섬소동>, <황야의 산적>, <불법의 정의>, <안나와샴왕>, <호중의 여인>, 프랑스 영화 <제2정보부>, <사랑의 상속자>, <죄와벌>, <창살 없는 감옥>, <새벽에 돌아오다>, <집 없는 아이>, <애욕>, <칼멘>, <영원의 고백>, <최후의 망루>, <허무한 사랑>, <금남의 집>, <연대의 처녀>, <파리제>, <악마의 돈>, <외인부대>, <산모리츠의 처녀>, <유혹의 밤>, <파리의 농아>, <암흑가의 인생>,영국영화 <처녀의 애정>, <요부전>, <원시림>, <마법의 악궁>, <정열의 해협>, <숙명의 마돈나>, <캐라반>, <마음의 구속>, <워터루가>, <밀회>, 독일영화 <미의 제전>, <아베마리아>, <백설지옥>, <쾌남아>, <나가자 용기대>, <인조인간>, <춤추는 시절>, 이탈리아영화 <처녀의 7인>, <처녀도회>, 중국영화 <다화녀>, <철혈혜심>, <백골의 살인사건>, <4억의 화과>, <영원한 사랑>, <안개낀 상해 뒷거리>, <일본 간첩>, <진랑옥>, <복수의 거리>


09 1946년 7월 19일, 20일 2일간 조선신판영화 봉절, 나운규프로덕슌 대작 절대신판<아리랑> 전편(前篇)고 나운규·신일선 대열연, 해설 이상호 熱辯. 조선극장(1946년 7월 19일 민중중보 광고)
10 1946년 3월 29일부터 2일간 주야 연속상영 조선극장. 조선 일류 영화해설자=홍순중씨 특별 래연(來演)=, 2대 조선명편 인정비극<무지개>, 문예봉, 독은기 주연 절대신판<장화홍련전> *보시요 눈물겨운 해설과 영화를(1946년 3월 29일 민주중보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