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 영화시대 부산관객을 사로잡았던 최고 인기영화는 단연 연속활극 시리즈물이었다. 처음 상영된 연속 활극은 미국의 트란스 아틀란틱사가 제작한 50권짜리 대모험 대활극 <하트3!!>이 1916년 7월 8일 보래관에서 개봉됐다. <하트3!!> 개봉 하루 뒤인 7월 9일 경쟁영화관이던 행관은 미국 유니버셜사의 50권짜리 모험활극 <명금01>을 개봉하여 활동 사진 상설관 시대 이래 처음으로 보래관과 행관이 치열한 흥행 전쟁에 들어갔다. <명금>은 매편 위기의 연속으로 흥미진진한 인기를 끌기에 충분했으며 당시 부산에서 발행되던 일간지 조선시보에 영화 상영과 때를 같이 하여 40회에 걸쳐 줄거리가 연재되면서 영화흥행의 촉매를 유발케 했다. 감독, 주연을 맡은 후란시스 포드는 후일 <역마차>(1939)로 명성을 얻는 존 포드 감독의 형이다. 맞대결을 벌인 영화 <하트3!!>은 1주에 5편을 상영한 반면 <명금>은 2편씩 편성 상영되었다. 흥행전의 결과는 <하트3!!>이 1개월 만에 종영된 반면 인기가 하늘 무서운 줄 몰랐던 <명금>은 3개월 10일 만인 10월 20일 종영되면서 연속활극물의 첫 번째 대결은 행관의 선승으로 끝났다.

이들 시리즈물의 내용은 거의가 액션활극 위주였으며 1주에 2권이나 4권을 기본으로 편성하여 상영하였으며 1편의 시리즈물은 2개월 반 정도가 소요되었다. 연속활극 시리즈의 열기는 후일 TV시대의 인기연속극과 크게 다르지 않게 인기를 끌었던 영화였다. 연속활극 시리즈의 인기가 대단하여 남자 주인공의 이름 앞에는 활극왕(活劇王), 쾌남자(快男子), 쾌한(快漢), 진인(珍人), 육탄왕(肉彈王), 사나이 중의 사나이, 모험왕(冒險王), 맹우(猛優), 여자 주인공은 모험여우(冒險女優), 맹여우(猛女優), 명화(名花), 명성(名星) 등의 당시 시대(풍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매우 특이한 닉네임이 따라 다녔다.

흥미진진했던 이들 인기 연속물은 1929년 자취를 감출 때까지 보래관, 행관, 상생관의 돈줄이었으며 관객을 극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단골 메뉴로 자리 잡아갔다.
경쟁관계의 3대 극장주들은 화제작의 경우 공동보조를 같이 한 사례도 있었다. 미국 파테사가 만든 해롤드 로이드 주연의 희극 영화 <거인정복>의 경우는 1925년 3월 6일 행관에서 개봉된 후, 7일 상생관, 9일 보래관이 차례로 개봉에 들어가 동시에 상영되었다. 이 같은 사례는 활동사진 상설관인 보래관, 행관, 상생관의 일인 극장주들이 ‘부산 키네마협회’라는 경영 조직체를 통해 결속을 강화하면서 그들만의 독과점 때문에 가능했었다. 활동사진 상설관시대 부산에 거주했던 관객 도요이치는 1926년 부산을 대표하던 3대 영화관의 소식을 키네마순보02에 기고해 동시대 부산 극장가의 분위기를 다소나마 읽게 해주어 소개한다.

동아의 관문 부산에 키네마 상설관이 3개관이라는 것은 제군들에게 통신을 전하기에 왠지 창피한 일이다. 그러나 점차 내용이 충실해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우리 팬으로서는 든든하다. 사이와이칸(행관)은 부산에서 가장 기대되는 상설관으로서 자타가 모두 인정하고 있다. 특히 음악부의 활약은 눈에 띌 정도이며, 내지 대도회지의 일류관과 비교해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해설부와 선전부도 그렇다. 원래 닛카츠(日活) 계통의 영화관이었는데, 작년 무렵에 마키노 전문관으로 변경되었으며 만선에서 마키노의 개봉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계속 대작들이 상영되고 있다. 가끔 마키노 산하인 교코쿠(京極)보다 빨리 개봉하는 일도 있다. 따라서 4개사 경쟁 상영이 되면 전국 몇 대 도시의 일제 개봉관 수준으로 열거되는 것이 이 영화관의 생명줄이라고 할까. 시대극 해설자도 하나이 고슈(花井孤丹)씨인데 이곳 해설자 중에서 하나이씨 보다 나은 이는 없다. 주로 상영된 양화(외국영화)는 <피터팬>, <동쪽으로 가는 길>(東道), <소리없는 경보>, <돈큐>, <로이드의 신혼>, <화이트 시스터>, <춘희> 등으로 아라키 가토가 변사를 맡고 있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폭풍 나라의 테스>, <공작>도 상영할 움직임이다. 아이오이칸(상생관)은 쇼치쿠(松竹) 계통의 영화관이며, 일본물이 약 한 달 정도나 늦는다. 반쓰마(阪妻)가 입사한 이후 눈에 띄게 인기를 회복하여 반쓰마 영화라고 하면 만원이 된다. 이는 어디서나 그럴 것이다! 음악부나 해설부는 행관과 비교하면 약간 뒤떨어지는 느낌이다. 보통 쇼치쿠 시대극이나 현대극 양극 한편 정도로 상영하는데 올해 수확으로서는 <매맞는 그 녀석>, <황금광시대>, <탄식하는 피에로>, <빌레니의 정화>, <바다의 야수> 등이었다. 이외에 일본물은 <바닷사람>, <다이난공>, <히로세 중좌>, <노키장군> 등이 빛났다.

호라이칸(보래관)은 데이키네사(帝キネ社)와 폭스사의 작품을 상영하고 있는데, 선전이 부족해서 다른 영화관으로부터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 이치카와 모모노스케(市川百之助)도 일부 관객들은 좋아하고 있지만, 역시 마키노와 반쓰마 만큼은 아니다. 이 외에 교외의 2개관03이 있으나 이류관으로 내용에 충실을 기하고 있는 것은 기쁜 일이다. 이들 외에 특필해야 할 통신은 <십계>, <인형의 집>, <아시아의 빛>, <로제타>가 상영된 것이다. 감상회의 발전을 바라 마지않는 바이다. 우리 팬이 바라고 있는 양극(洋劇: 외국영화)이 첨가물 정도로 상영되는 것은 유감이다. 관주제씨는 앞으로 자중해 주기를.

활동사진 상설관 시대 부산 극장가의 흥행 성적은 활동사진 관객이 날로 증가하면서 공연물 관객을 앞지르는 신장세를 보였다. 극장 관람료는 1915년 3월 9일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재개관되는 보래관이 외국영화 <비밀서류> 등 총 7편을 상영하면서 1등석 25전, 2등석 20전, 3등석 10전으로 구분하여 받았다. 같은 해 4월 23일 부산좌는 25,000척 짜리 5시간의 장편영화 <아 무정>(원제: 레미제라블)을 특별상영하면서 특등석 1원, 1등석 70전, 2등석 50전, 3등석 30전을 받아 보래관보다는 3배 이상의 비싼 요금을 받았다. 그 해 10월 23일 부산좌에서 상연된 연쇄극은 전좌석을 15전 균일요금으로 입장시켰으며 3등석만은 10전을 받는 파격적인 요금을 받기도 했다. 같은 해 12월 19일 상설관으로 개관된 행관은 외화 <술의 죄> 등 5편의 상영요금을 1등석 30전, 2등석 20전, 3등석 10전으로 군인, 학생, 어린이는 50% 할인하여 반값에 입장시켰다. 행관의 경우 1등석 요금만은 보래관보다 5전을 더 받아 상설관에서의 우위경쟁을 드러냈다. 상설영화관시대 2년차에 접어든 1915년도 입장료는 특별흥행작의 경우 일반 상영작과는 요금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일반영화는 특등석, 1등석, 2등석, 3등석으로 차등화했으며 군인, 학생, 어린이는 50% 할인입장 되었다.

반면 극장의 관객동원은 행좌, 변천좌, 동양좌, 질자좌, 초량좌, 부산좌 6개 극장에서 상연된 가부끼 흥행이 115일간 24,721명, 신파극이 113일간 25,360명, 낭화절이 226일간 21,005명, 죠루리 씨름이 총 1,332일간 187,441명이 관람했다. 활동사진 흥행은 욱관, 보래관, 행관에서 661일간 180,903명이 관람하여 전체 공연물보다 활동사진이 강세를 보였다.04 1915년 부산 인구는 일인 거류민이 29,890명, 한국인이 27,392명, 총 57,282명으로 활동사진관람은 1인당 3.15회를 기록했다. 1916년 들어 활동사진 상설관의 입장료는 전년도 보다 등석별로 10전씩 인상세를 보였다. 행관은 1등석 40전, 2등석 30전, 3등석 15~20전에 입장됐으며 보래관은 1등석이 50전을 받아 행관보다는 10전이 비쌌으나 2~3등석은 동일했다. 관객동원은 상생관과 대흑좌가 가세하면서 590일간 243,657명이 관람하여 전년보다 62,754명의 증가세를 보여 인구 60,579명은 1인당 4회씩 감상했으며 입장료 총수입은 24,365원 70전에 달했다. 공연 흥행은 구극이 282일간 70,184명, 신파극이 79일간 13,627명, 낭화절이 64일간 6,589명, 죠루리가 26일간 4,444명, 견세물 32일간 5,045명, 씨름 30일간 2,828명, 기술이 38일간 5,289명, 그 외 곡예흥행, 비파 등을 합계 연일수 1,143일간 359,384명이 입장05하여 활동사진보다 115,000명의 증가세를 보여 1916년 부산지역의 극장 흥행은 최고조에 달했다.

1917년의 활동사진 상설관의 운영은 전년도와 비슷하였으나 보래관의 경우는 1, 2, 3등석 구분방식을 상, 하 2단계로 구분하여 상층 30전, 하층 15전을 받았다. 7월 8일 행관에서 개봉한 외화 <맥베스>는 1등석 요금이 2원을 받아 평상시 요금인 50전보다 4배 이상의 비싼 요금을 받았다. 2등석은 1원, 3등석 50전으로 영화 상설관 시대 이래 최고액의 입장료를 기록했다. 1918~1919년의 상설관은 1등석이 60전을 받아 1915년의 30전보다 2배나 인상되었다. 1921년도 상설관의 입장료는 1원 시대를 맞았다. 보래
관은 상층 1원, 하층 70전을 받았으며, 9월 23일 부산좌에서 상영된 종교영화 <어디로 가시나이까>(원제: 쿼봐디스)는 1등석 1원, 2등석 70전, 3등석이 50전을 받았다.
1923년 보래관은 1등석 1원 50전, 2등석 1원 20전, 3등석 70전을 받으면서 입장료는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보였다.

1924년도 행관, 상생관, 보래관에는 247,813명이 입장06했으며 공연물 포함 337,228명이 관람하여 부산부의 8만 인구는 연평균 3.1회 영화를 감상하였다.
1925년까지는 1등석 입장료가 1원을 유지해왔으나 1926년~1929년까지는 상층 40~60전, 하층 30~40전으로 인하되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활동사진 상설관 시대의 입장료는 1915년으로부터 1925년까지 10년간의 통계를 비교하면 1등석 25전이 1원으로 대폭 상승세를 기록하였으며 관객은 1915년 180,903명에서 1924년 247,813명으로 67,000명 증가세를 보였다. 동시대의 활동사진 흥행은 1일 주야 2회 입장됐으며 회당 상영된 작품은 연속활극, 태서활극, 실사, 골계(희극영화) 등의 외국영화와 일본
의 연쇄극, 구극, 신극 등 5~7편의 흑백, 무성 영화가 상영됐다. 작품당 상영 시간은 초기에는 1권(10분) 내외의 짧은 필름이 대부분 상영되어 오다 3~4권 이상의 중편에서 장편물들이 상영되기 시작했다.


01 <명금>(名金: The Broken Coin) 1915년 제작. 후란시스 포드 감독, 주연
02 1926년 11월 26일, 통권246호, 66쪽
03 도요이치는 본고에서 3개관과 교외의 2개관인 제2행관과 유락관 총 5개관을 소개했으나 그 외 연극, 영화를 상연했던 극제관과 태평관은 거론하지 않았다.
04 1916년 1월 25일 부산일보
05 1917년 2월 18일 부산일보
06 1925년 2월 1일 부산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