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최초로 영화가 유료 공개된 후, 우리나라에는 8년 만인 1903년, 활동사진을 상영하는 광고가 황성신문에 처음으로 보도되면서 공식 상영되었다. 그러나 영화가 일반에 상설 상영되기까지는 다시 7년여의 세월이 흐른 1910년 서울의 경성고등연예관이 개관되면서 활동사진 상설관 시대가 열렸다.

부산은 1904년 행좌에서 처음으로 영화가 상영된 후 10년이 지난 1914년 극장 욱관이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개축하여 상설관 시대를 열어나가면서 였다. 영화 탄생 이후 활동사진이 부산에서 상설상영이 되기까지는 장장 19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부산지역 극장의 활동사진 상설관 시대는 영화가 상설 상영된 1914년부터 1929년 발성영화관 시설을 갖춘 극장이 등장하기까지의 기간으로 당시 부산은 무성 영화시대의 호황기를 누린 시기였다.

상설영화관 제1호인 욱관(1912~1916?)의 뒤를 이어 활동사진 상설상영관 시대를 이끌어간 8개의 극장은 행정(창선동)의 보래관(1914~1973)을 시작으로 초량정(초량동)의 초량좌(1914?~1917?), 남빈정(남포동)의 행관(1915~1930), 본정(동광동)의 상생관(1916~1976), 안본정(중앙동)의 국제관(1920~1929), 좌천정(좌천동)의 유락관(1922~1932), 행정(창선동)의 태평관(1922~1943), 영선정(영선동)의 수좌(1924~1990)가 각각 개관됐다. 이들 극장들은 부산 중심부인 중구에 행관, 상생관, 국제관, 태평관 4곳, 동구지역에 초량좌, 유락관, 영도에 수좌가 위치하면서 부산을 대표하는 영화관으로 성장, 자리잡아갔으며 그 명성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들 극장 중에는 욱관이 가장 먼저 폐관된 후 변천좌, 초량좌, 질자좌, 동양좌 등이 1916년부터 1918년 기간에 폐관되면서 무질서했던 극장가가 평정되는 과도기를 거쳐 행관, 보래관, 상생관이 새롭게 부산을 대표하는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자리잡아 가면서 부산키네마협회를 결성하여 선의의 경쟁으로 승승장구 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