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최초의 극장, 행좌 (1903년?~1915년)
부산 최초의 극장, 행좌 (1903년?~1915년)
✽ 극 장 명 : 행좌(幸座: 사이와이자)
✽ 주 소 지 : 남빈정
✽ 현주소지 : 중구 남포동2가 45-1
✽ 개관일자 : 미상(1903년?)
✽ 폐관일자 : 1915년
✽ 좌 주 : 하사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
1904년 부산에서 처음으로 활동사진(영화)이 상영되었던 극장 행좌는 부산에 세워진 최초의 극장이다. 행좌는 개항이후, 근대화의 물결과 함께 일본인 전관 거류지내 중심지였던 남빈정의 남빈해안(자갈치)가의 광월루와 마주 보던 위치에 일본인 하사마 후사타로에 의해 건축되어 상설 연극공연 극장으로 출범한 곳이다. 현주소는 중구 남포동 2가 24-1번지, 2014년부터 실시된 신주소는 남포이음 1길 35.
극장 행좌가 세워지는 시대적 배경과 주변 환경을 살펴보면 1876년 조선 최초로 일본에 의해 개항된 부산은 6년째 되던 해인 1881년 일본거류지 내에 가설극장 설립에 대한 관계법령이 제정되어 시행에 들어가면서 가설극장 경영이 시작되고 1895년에는 상설 옥내극장이 설립, 경영될 수 있는 ‘극장취체규칙’과 ‘흥행취체규칙’이 제정 시행되면서 부산은 일찍부터 극장이 탄생되는 기반이 조성되고 있었다.
1903년 극장 행좌가 상존했었던 부산은 오늘의 중구지역이 근대도시로서의 기반구축이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부산매축회사의 매축지공사와 함께 경부철도회사 매축예정지, 부산 정차장 예정지가 조성되어 항구도시로서의 면모를 드러냈으며 행정구역은 용두산을 중심으로 북빈정, 남빈정, 본정, 변천정, 행정, 대청정, 상반정, 금평정, 서산하정, 서정, 부평정으로 구획이 구분되고 있었다. 주요 건물로는 일본영사관, 경찰서, 조선전신국, 해관, 해안우편국 등의 관공서를 비롯하여 제일은행, 18은행, 58은행, 공립병원, 조선시보사, 개성학교와 공립소학교, 부산창고회사, 부산무역회사, 오백정지점, 대지상점, 일본우편회사, 부산 토목합자회사, 일한공업조, 일조정미합자회사, 부산정미소, 철도회사, 수산회사, 전염회사, 어시장 등의 상공관련 회사, 용미산과 용두산의 신사, 고야산 대사당, 본원사, 묘각사 등의 사찰과 일본인의 묘지까지 조성되어 있었다. 그중 일본인들의 상권과 주거중심 지역이던 남빈정에는 극장 행좌가, 행정 2정목의 사안교 앞에는 또다른 극장 송정좌가 대중문화 공연장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극장 행좌의 역사성을 복원하면서 가장 먼저 제기된 문제는 자료 부재로 인해 개관일이 미상인 현재 그 기준을 1903년 12월 발행된 ‘부산항시가 및 부근지도’를 기점으로 폐관되는 1915년까지를 상존기간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개관일 발굴에 따라 개관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부여해 주고 있다. 극장 행좌에 관련하여 … 박원표08는 일본인 거류지에는 일류극장이 밀집하고 있었다. 한일합병 전후부터 부산의 일본인 거류지에 자리잡은 지금의 광복동의 행좌는 하사마의 출자로 경영되었고 …(중략)… 광복동의 행좌는 1925년부터 제1행관으로 명칭을 바꾸고… 이 기록은 행좌가 폐관된 지 52년 만에 발표된 것으로 박원표는 개관시기를 1910년 전후라고 모호하게 발표했으며 개관연도를 정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극장 행좌는 노후된 나머지 1915년 완전 철거09된 후 활동사진 상설관인 행관을 신축함으로 행좌가 제1행관으로 개명된 기술은 오류였음이 규명되었다. … 박노홍10의 주장은 1890년대에는 부산에 정착한 일본인들의 목조로 된 조그마한 시바이고야(芝居小屋)라고 일컫는 연극과 연예를 상연하는 무슨좌라는 건물이…, 그들이 극장의 자세한 것은 알길이 이젠 없다 …고 제시함으로 극장 행좌에 대한 역사성을 제대로 규명해주지 못한 경우였다.
행좌의 실증적인 입증사례는 1907년 8월 15일 발행된 지도자료 ‘한국부산항시가명세도’에서 행좌와 함께 송정좌, 부산좌가 나타나 같은 해 7월15일 개관된 부산좌의 흔적도 동시에 검증시켜 주었으며, 그외 「부산요람」(1912년, 부산상업회의소)은 행좌와 함께 부평정 소재의 부산좌와 동양좌, 목도(영도)의 질자좌, 본정(本町)의 기석(寄席) 극장 변천좌와 행정의 보래좌 등 총 6개의 극장이 상존했음을 확인시켰다. 경상남도청이 편찬 발행한「경상남도 안내」(1914년, 조선시보사) 부산편 극장 소개에서는 행좌, 부산좌, 동양좌, 질자좌, 초량좌, 욱관 보래관이 보고되고 있어 동시대에 상존했던 부산지역 극장 전체의 실체를 재확인케 해주었다. 그 외에도 「부산항세일반」 (1905년, 일한창문사), 「조선실업」(1905년, 조선실업협회) 등의 문헌자료에서도 극장 행좌의 역사성을 재확인해주어 행좌가 경영되었던 시기에 공존했던 극장은 모두 10개소에 달했다.
송정좌(1903년?~1911년?)를 비롯하여 부귀좌(1905년?~1907년)와 부산좌(1907년~1923년), 변천좌(1912년?~1916년), 동양좌와 질자좌(1912년?~1918년?), 욱관(1912년~1216년?), 보래관(1914년~1973년), 초량좌(1914년?~1917년?)로 이들 극장중에는 1912년부터 1914년 사이에 세워진 6개 극장의 대다수가 극장업의 돈벌이(흥행)에만 급급했던 나머지 난립 끝에 공연유치는 물론 관객관리, 활동사진상설관 시대로의 전환에 따른 필름수급 등의 문제점으로 인한 경영상 애로를 겪다 1918년경에는 모두 문을 닫고 말았다. 극장 행좌의 무대에서는 일본씨름을 시작으로 연극 장사, 부연절겐지부시, 죠루리제문, 곡예흥행, 마술, 비파흥행 등 모두 일본의 대중문화가 직수입되어 공연되었으며, 목조건축물인 극장 행좌가 노후화되자 1915년 완전철거 후 같은 위치에 동양 최고를 자랑하는 활동사진상설관인 행관(幸館)이 신축되었다.
“부산최초의 극장 행좌” (幸座)
누구에겐들 풀어놓아 한편 영화쯤 못 만들어 낼 인생이 있을까? 무성(無聲) 그리고 무채색(無彩色)의 필름에 담긴 영화를 보며 때로는 절절이 고달픈 사연 앞에 내 인생을 인도하고 때로는 벅차도록 먼발치 화려한 인생을 꿈꿔보던 곳 행좌(幸座), 부산 최초로 영화가 상영되었던 이곳에서 10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 함께 웃고 울었을 그 각각의 인생들을 환생(還生)시켜본다.(2009년 부산광역시가 부산 최초의 극장 행좌를 기리고저 세운 표지석문)
07 「부산항세 일반」 일한창문사, 1905년
08 부산의 흥행가: 「향토부산」 태화출판사, 1967년, 89쪽
09 1915년 10월 15일 부산일보
10 한국극장사, 1979년 11월 한국연극, 박노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