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세워진 세 번째 극장, 부귀좌 (1905년?~1907년?)
부산에 세워진 세 번째 극장, 부귀좌 (1905년?~1907년?)
✽ 극 장 명 : 부귀좌(富貴座: 후끼자)
✽ 주 소 지 : 부평정 / 부평동
✽ 개관일자 : 1905년(?)
✽ 폐관일자 : 1907년(?)
✽ 관 주 : 미상
극장 부귀좌는 행좌, 송정좌에 이어 부산에 세 번째 세워진 연극전용 극장이다. 부귀좌의 흔적은 1906년 3월 15일 부산에서 발행된 「조선실업11」제10호에 보도된 극장 부산좌(釜山座) 신축에서 처음으로 나타나고 있다. “부산에 극장으로는 행좌, 송정좌, 부귀좌 세 극장이 있었으나 당시처럼 부산이 발전하기 이전의 설계라면 현재에 비하면 좀 비좁다는 느낌이 있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우려가 있었다는…”필자의 원고 작성 시기는 1905년 12월로 극장 부귀좌는 앞의 기록에서 확인된 것과 같이 1905년 12월 현재 상존했던 극장으로 확인됐다.
부평정에 자리했던 극장 부귀좌에 대한 개폐관 시기와 위치, 좌주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개관시기를 비교할 수 있는 자료의 하나로 1905년 9월 1일 발행된 「부산항세 일반」에는 행좌, 송정좌만 기록되고 있어 같은 해 하반기에 개관된 것으로 유추되고 있다. 또 다른 제시자료인 1907년 8월 1일 제도된 지도 ‘부산항시가 명세도’는 행좌, 송정좌와 함께 같은 해 7월 15일 개관된 부산좌가 등재되고 있으나 극장 부귀좌가 없는 것은 그 이전에 폐관된 것으로 추론되고 있다.
앞의 내용 중 행좌, 송정좌, 부귀좌 세 극장 모두가 비좁다고 한 것으로 보아 세 극장의 규모는 별로 크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진다. 극장 규모는 1980년대 붐을 일으켰던 소형 영화관 시대와 비슷한 100~150석 정도의 작은 극장으로 추정되며 이들 극장에서는 일본의 도쿄, 오사카 같은 대도시에서 온 꽤나 알려진 배우들이 공연하기에는 무대가 협소했던 나머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함으로 대형극장인 부산좌를 세우려고 계획했다고 밝혔다.
11 조선실업(朝鮮實業)은 1905년 부산에서 창간된 조선실업협회 발행의 기관지로 내용은 부산을 중심으로 그들의 활동과 동향 소개가 위주였으나 한일합병 이전에 일본이 조선 합병을 위한 명분을 앞세워 발행된 성격의 대변지다.「조선실업」 간행 인사 중에는 후일 조선키네마(주) 대표였던 총포화약상인 나데 오도 이찌가 간사 평의원으로 변호사 출신 감사 구보다 고로, 부산좌 대표 오이케 타다스케, 행좌 대표 하사마 후사타로 등이 특별회원으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