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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화 공식 상영

일제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내세운 문화정책은 내선일체를 가장하여 민감하게 통제한 분야가 활동사진(영화)이었다. 발성영화 상영관 시대의 부산지역 영화관에서는 지나사변을 비롯하여 태평양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벌인 자국의 침략전쟁과 관련한 홍보 영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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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성영화 상영관 시대 7개 극장 개관

1927년 9월 6일 미국의 워너 브러더스 영화사가 연구, 개발하여 첫선을 보인 토키(발성)영화 <재즈싱어>는 영화기술 발달의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영화가 말(소리)을 하기 시작한 그날로부터 2년이 채 안 되는 1929년 7월 18일 부산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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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관시대(1953년~1976년)

휴전이 협정된 후 임시수도가 환도하면서 부민관은 1953년 9월 22일 시민관(市民館)으로 개명 후 알프렛 히치콕 감독의 <암굴의 야수> 상영을 시작으로 새로운 시민관시대를 열어갔다. 그러나 시민관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동아극장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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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극장과 부민관 시대(1946년~1953년)

광복된 상생관은 소화관, 보래관, 부산영화극장과 함께 1945년 12월 17일 일제강점기때 사용되어 오던 극장명을 우리 손으로 작명하기 위해 현상금 4,000원을 내걸고 선정에 들어가 대중극장(大衆劇場)이라는 명칭으로 새롭게 태어나면서 1946년 1월 1일부터 불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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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관시대(1916년~1945년)

상생관은 연극전용극장인 변천좌(1912년?~1916년)를 미쯔오 미네지로오가 인수하여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개축하여 개관된 곳이다. 대지 95평, 1, 2층 총건평 165평으로 관객은 1층 350명, 2층 307명, 입석 148명, 총 805명이 수용되었던 영화관으로 상생관의 외형장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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