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부산 극장가, 관객 동원 최고기록
한국영화 중흥기(1958년~1964년)와 전성기(1965년~1970년)를 열어가던 1960년대는 4·19 학생의거와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국내 정정이 혼란을 겪으면서도 부산은 1963년 1월 1일 직할시로 승격, 인구는 136만명을 돌파하여 명실상부 한국 제2의 도시로 발돋움해 가던 시기였다.
극장 분포도 산업발전으로 인구 이동의 변화를 보이면서 서면 지역이 약진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1960년대 새롭게 문을 연 부산지역 극장은 총30개소에 달했다. 1960년 초량동의 천보(天寶)극장을 시작으로 범일동의 대성(大盛)극장, 구포의 신영(新映)극장, 영도 영선동의 명보(明寶)극장, 중앙동의 학생전용극장인 아카데미극장, 동광동의 동광(東光)극장 등 6개소,1961년 동대신동의 서부(西釜)극장, 충무동(남포동)의 동명(東明)극장과 왕자(王子)극장, 부전동의 태평(太平)시네마 등 4개소, 1962년 부전동의 노동회관(勞動會館)극장과 태화(太和)극장, 이성(二星)극장, 문현동의 보영(寶映)극장, 우암동의 우암(牛岩)극장, 거제동의 동궁(東宮)극장, 영도 봉래동의 대양(大洋)극장, 괴정동의 신촌(新村)극장 등 8개소, 1963년 범일동의 부일(釜日)시네마, 구포의 동영(東映)극장 등 2개소, 1964년 온천동의 금정(金井)극장, 광안동의 광안(廣安)극장 등 2개소, 1967년 서구 충무동의 동양(東洋)극장, 장전동의 국보(國寶)극장 등 2개소, 1968년 양정동의 신도(新都)극장, 범일동의 보림(寶林)극장 등 2개소, 1969년 충무동(남포동)의 부영(釜映)극장과 국도(國都)극장, 장전동의 동성(東星)극장, 가야동의 대명(大明)극장 등 4개소가 개관되었다.
60년대 들어서도 개봉관인 동명극장, 부영극장, 국도극장은 모두 상권과 인구가 밀집해 있던 중구에 분포되면서 중구는 과거이래 부산의 극장가 일번지로서의 명성을 변함없이 이어갔다. 반면 이들 극장의 지명도가 약진하면서 과거 명성을 누렸던 문화극장, 동아극장, 시민관은 시설 노후와 함께 퇴조의 길을 걸으면서 그 중 동아극장이 1968년 가장 먼저 폐관되었다.
그 외 한국전쟁 이후 마구잡이 식으로 생겨났던 제2문화관, 남도극장, 동광극장, 금성극장, 아카데미극장은 경영난으로, 구포극장은 화재사고, 중앙영화관은 도시계획으로 폐관됐다. 보림극장, 부일시네마는 중구에서 범일동으로 신축 이전됐으며, 극장 경영의 입지조건이 좋았던 충무극장은 왕자극장, 광명극장은 국도극장으로 재탄생되기도 했다. 1960년대 인기 외화는 <나바론>, <콰이강의 다리> 등의 전쟁영화와 미국판 서부극이 강세였으나 70미리 영화의 등장과 함께 선풍을 몰고 온 007시리즈, 이탈리아제 마카로니 웨스턴, 중국 무협영화 등 재미를 갖춘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고르게 수입되면서 1960년대 부산 극장가의 흥행은 역대 최고로 쾌속 항진을 이어갔다.
007 시리즈는 2탄인 <위기일발>이 먼저 선보였다. 1965년 5월 19일 현대극장에서 개봉, 6월 23일까지 1개월을 넘기면서 흥행에 성공하자 수입사인 한국예술 영화사는 <위기일발>에는 못미쳤던 1탄 <살인번호>(1962)를 같은 해 9월 1일 추석프로로 현대극장에서 상영, 이후 007시리즈는 상종가를 치면서 입장료 인상의 선봉장 역할을 주도해갔다. <위기일발>이 다른 영화와 같이 65원으로 출발했으나 뒤를 이은 <살인번호>는 80원으로 껑충 인상되었다. 3탄 <골드핑거>(1964)는 풍전상사가 수입, 1967년 동명극장 신년프로로 120원을 받아 2년도 채 못되어 100% 인상되었다. 4탄 <산다볼 작전>(1965)은 1969년 동명극장에서 200원을 받으면서 1962년 <벤허>가 받았던, 고액 입장료 150원의 기록을 돌파하기까지 했다. <두번산다>(1967)부터는 벽산그룹 계열의 부영극장이 독식하다시피 상영해 부영극장 앞은 언제나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1966년 들어서는 게리쿠퍼, 존 웨인, 스티브 맥퀸, 제임스 스츄어트, 헨리 폰다, 커크 더그라스 등이 자리했던 서부극 지도에 뜬금없이 챙이 넓은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흙먼지 휘날리는 마을 입구에 다 떨어진 도포를 어깨 위로부터 허리 아래까지 축 늘어뜨린 채 특유의 실눈을 비스듬히 뜨고 시가 한 대를 빼물고는 적을 응시하다 숫자가 얼마가 되었건 상관없다는 듯 순식간에 해치워 버리는 <황야의 무법자>가 돌풍을 몰고 오면서 엔니오 모리코네 특유의 멜로디와 함께 통쾌감을 주었던 마카로니 웨스턴은 첫 해 4편, 1967년에는 줄리아노 젬마 주연의 <황야의 은화일불> 등 무려 15편이 무더기로 공개되면서 무자비한 살상이 여론의 뭇매를 맞는 듯 했으나 수그러들 줄 모른채 지속되었다.
1969년 현재 부산지역의 극장 수는 총 54개소로 연간 23,229,566명이 영화를 감상, 1인당 13.86회를 기록하여 2013년 현재까지도 경신되지 않을만큼 60년대 부산 극장가는 호황기를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