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부산지역 극장 총 23개소
부산지역에 극장이 세워진 것은 ‘극장 및 제흥행취체규칙’이 제정, 시행에 들어간 1895년을 기점으로 광복을 맞기까지 개관 경영된 곳은 총 23개소다. 시대별로 구분하면 공연중심으로 경영되어온 활동사진상설관 이전시대(1895년~1913년)의 8개 극장은 행좌(1903년?~1915년), 송정좌(1903년?~1911년), 부귀좌(1905년?~1907년), 부산좌(1907년~1923년), 변천좌(1912년?~1916년), 동양좌(1912년?~1918년?), 질자좌(1912년?~1918년?), 욱관(1912년~1916년?)이다. 활동사진상설관 시대(1914년~1928년)는 보래관(1914년~1973년), 초량좌(1914년?~1917년?), 행관(1915년~1930년), 상생관(1916년~1976년), 국제관(1920년~1929년), 유락관(1921년~1932년), 태평관(1922년~1943년), 수좌(1924년~1990년) 8개 극장, 발성영화상영관 시대(1929년~1945년)는 중앙극장(1930년~1980년), 소화관(1931년~1968년), 부산극장(1934년~현재), 구포극장(1939년?~1967년), 대화관(1942년~1976년), 삼일극장(1944년~2006년), 동래극장(1944년~1984년) 7개 극장이 세워져 경영되었다.
그러나 23개 극장 중 광복을 맞았을 때는 13개 극장은 폐관되고 남겨진 곳은 총 10개소였다. 중구의 상생관(시민관), 보래관(문화극장), 소화관(동아극장), 부산영화극장(부산극장), 영도구의 수좌(항구극장), 동구의 대생좌(중앙극장)와 대화관(최종 동서극장), 삼일극장, 동래구의 동래극장, 북구의 구포극장이다.
근대 부산지역에 상존했던 극장을 연대기순으로 분류하면 초기 1903년?부터 1909년까지는 행좌, 송정좌, 부귀좌, 부산좌 4개 극장이 경영되었으며 극장 부족시에는 가설극장이 허가되어 운영됐다. 1910년대 들어서는 변천좌, 동양좌, 질자좌, 욱관, 보래관, 초량좌, 행관, 상생관 등 8개 극장이 차례로 개관되었다. 그 중 보래관, 행관을 제외한 8개 극장은 화재사고와 경영악화로 폐관되는 악순환이 이어졌으나 총 9개 극장이 경영되어 일제 강점기 중 가장 많은 극장이 분포했던 시기였다.
1920년대 들어서는 국제관, 유락관, 태평관, 수좌 4개 극장이 개관됐으나 부산좌와 국제관이 화재로 소실되어 실제 경영된 극장은 평균 8개소 유지되었다. 1930년대 들어서는 중앙극장, 소화관, 부산극장, 구포극장이 개관되었으나 행관과 유락관이 화재로 폐관되어 총 10개 극장이 경영됐다. 1940년대는 대화관, 삼일극장, 동래극장 3개 극장이 개관했으나 태평관이 화재로 소실됐으며 광복 후 남은 10개 극장은 영화관으로 계속 경영을 이어갔다. 총 23개 극장이 상존한 기간을 보면 극장들의 수명은 대체로 길지 못했다.
5년 미만에 자취를 감춘 극장은 부귀좌, 변천좌, 욱관, 초량좌 4개 극장이며 10년 미만도 송정좌, 동양좌, 질자좌, 국제관 4곳으로 이들 극장의 공통점은 1910년대 초기 너나 할 것 없이 신종 극장업에 뛰어들면 큰 돈을 벌수 있다는 이해관계 때문에 난립현상을 보였던 결과 1919년에는 모두 폐관되고 말았다. 원인은 한정된 관객과 공급구조 속에 공연물이나 필름수급이 원활치 못하자 입장료 할인 인하 등 과당경쟁으로 인해 극장경영은 실패로 이어졌다. 당시 극장들의 경영 기간은 11년간의 유락관을 비롯하여 행좌 13(?)년, 행관 16년, 부산좌 17년까지 5년 미만부터 17년 사이가 12개 극장으로 전체 23개 극장 중 절반을 차지했다. 그 중 상생관으로 개축된 변천좌와 노후되어 철거된 행좌, 송정좌 3곳을 제외한 9개 극장의 폐관요인은 모두 화재사고였다. 당시 극장은 목재건축물로써 구조적인 결함과 함께 난로 취급부주의는 물론 인화성 필름으로 인한 화재 사고에 매우 취약했던 나머지 빈번하게 발생했다. 비교적 장수했던 20년 이상의 극장은 태평관과 구포극장, 소화관은 38년, 41년간의 동래극장, 42년간의 대화관, 51년간의 상생관과 중앙극장, 59년간의 보래관은 개관 후 잦은 화재사고와 노후화로 유일하게 세 차례나 건축된 극장이다. 다음은 62년간의 삼일극장, 66년간의 수좌, 2014년 현재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극장은 서울 단성사를 제외한 지방극장으로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극장으로 기록되고 있다. 20년 이상 경영된 극장은 모두 10개 극장으로 그 중 태평관과 구포극장만 화재로 폐관됐을 뿐 소화관은 개관 당시 건물의 뼈대가 그대로 유지된 채 동아데파트 상가로 현존하고 있어 전국 극장 건축물 중 가장 오랜 건축물의 하나로 남아있다. 그외의 다른 극장들은 노후화와 시대의 변천으로 2, 3번관으로 전전하다 모두 폐관되었다.
당시 부산부청의 업무지침은 화재가 난 극장의 안전을 고려하여 동일 장소에서의 재건축은 단 한 곳도 허가하지 않음으로 부산을 대표하던 행관이 화재로 소실되자 대표 사꾸라바는 행관의 역사성 계승과 배급사인 사꾸라바 상회의 사업을 지속시키기 위해 경쟁 관계에 있던 보래관과 근접한 곳에 소화관을 신축했었다.